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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선 지하철이 한강을 건너 상행하고 있었다. 한동안 지하철에서 보기 어려웠던 이동 상인이 상품을 소개하고 있었다. 지하철 내에서 승인받지 않고 잡화를 판매하는 것은 불법이다. 단속이 과거보다 심해졌는지, 요즘은 노점상 만나기도 쉽지 않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귀신같이 상품을 바꿔가며 생활에서 필요한 것들을 3천원, 5천원에 파는 이들을 볼 때마다 마케팅 능력에 감탄하곤 한다. 이를테면 여름이 끝나갈 때 ‘선풍기 보관용 덮개’를 판매하고, 겨울이 시작될 때에는 손난로나 장갑 등을 저렴하게 파는 것이다.
평일 오후 한산한 3호선에 나타난 노점상 아저씨는 어째서인지 조그마한 목소리로 물건을 홍보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맞은편 남자 중학생 두명이 휴대폰으로 아저씨를 촬영하며 낄낄대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상인의 불법 행위를 고발할 작정으로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낯선 행위가 웃기고 신기해서 찍고 있었다. 상인은 이동용 가방을 서둘러 닫고는 문을 바라보고 뒤돌아섰다. 지하철에서 불법으로 상업 행위를 하고 있었던 사람과, 그런 그의 노동을 비웃는 10대 무리 중 누가 더 나쁠까. 삶의 어떤 풍경들은 쉽게 시시비비를 가리고 선인과 악인을 나눌 수 없다. 불법으로 물건을 파는 것이 그의 노동이었고, 그것이 아이들이 보기엔 낯설고 우스워 보였나 보다. 그 애들은 그 영상을 틱톡이나 유튜브 따위에 올렸을까?
공기처럼 존재하는 차별
남의 동네 대형마트에 과자를 사러 간 날이었다. 과자 코너에 서 있는데 직원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과자를 진열 중이던 여성을 향해 오래 일한 듯한 중년 여성이 말했다. “자기, ○○마트 정직원으로 올라갔어?” “네? 무슨 소리?” “아니, 자기 입은 그 잠바, 정직원만 입을 수 있는 거잖아.” “그래요? 몰랐어요. 추워서 입었는데. 벗어야 하나?” “하하하하, 아니야. 난 또 자기 정직원 된 줄 알고 축하해주려고 했지.”
일을 하다 보면 꼭 필요한 대화만 나누게 되지 않는다. ‘스몰 토크’라고 하여 분위기를 풀기 위해, 그냥 시간을 때우기 위해, 친분을 쌓기 위해 잡담을 할 때도 있다. 마트에서 들은 두 여성의 대화도 그런 것이었다. 악의를 담은 지적도 아니었고 정보를 주기 위한 대화도 아니었다. 두 사람은 진열이 끝나자 다리가 저린지 짝다리를 양쪽으로 옮기며 식품 코너에 서 있었다. 정직원만 입을 수 있는 잠바가 대화 속 유머로 여겨지고 차별은 일상 속에 공기처럼 존재한다.
시간대별로 아르바이트 사원을 채용하거나, 대부분 단기 계약직으로 채워지는 마트 일자리에서 정규직과의 차별 대우, 복리후생 따위를 따지는 일조차 이젠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그나마 있는 일자리마저 지금은 기계로 대체되고 있으니까. 계산대에 직원이 서너명은 근무하던 동네 천원마트 역시 얼마 전 키오스크 무인 결제 기계를 6대나 들여놓고 계산대에 사람은 한명만 근무한다. 물론 키오스크 결제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도움을 요청하는 바람에 한명의 직원이 분주하게 민원을 처리해야만 한다.
무인 결제기에 에러가 나고, 줄이 길어져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 손님들의 불평은 온전히 직원 한 사람에게 향한다. “죄송합니다. 빨리 처리해드리겠습니다.” 당황해 빨개진 얼굴로 연신 굽신대는 직원이 고개를 숙여야 고객의 화는 그나마 누그러진다. 키오스크 사용이 어려운 사람들의 화풀이 대상이 되는 것은 셋이 하던 일을 혼자서 도맡게 된 직원 1인이다. 말도 안 통하는 기계를 데리고 계약직으로 잠바조차 못 입고 일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는 그 자리에 나를 대입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좌식 좌석밖에 없는 숯불갈비 식당에 갔을 때였다. 방 하나에 4개의 테이블이 들어가 있고, 직원 한 사람이 방 하나를 담당했다. 서버들은 대부분 중년 여성들이었고, 좌식이다 보니 모두 허리를 굽히고 반찬을 놓고 갈비를 구웠다. 유명한 식당이라 손님이 끝없이 밀려들었는데, 혼자서 저 많은 걸 어떻게 하나 싶은 것을 오랜 연륜으로 뚝딱 해내고 있었다. 갈비를 굽는 팔뚝에는 화상 자국들이 나 있었다. “좌식이라 오래 일하면 허리 아프겠다.” 친구와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세상에 무엇 하나 쉬운 일은 없다.
타인의 상황을 상상하는 능력
일본에서 태어나 영국에 사는 작가 브래디 미카코의 아이들은 영국 학교에 다닌다. 아들의 학교 시험 문제로 “엠퍼시(empathy)란 무엇인가”가 출제되었고, 뭐라고 답을 썼냐고 묻자 아들은 이렇게 답한다. “스스로 남의 신발을 신어보는 것.” 엠퍼시와 심퍼시, 영어 단어로 해석하면 ‘공감’으로 해석되지만 그 둘은 다르다. 엠퍼시가 타인의 감정이나 경험을 이해하는 ‘능력’이라면 심퍼시는 누군가를 가엾게 여기는 감정이다. 심퍼시는 가여운 사람을 보면 자연히 생기는 감정이지만, 엠퍼시는 가엾지 않아도 타인의 상황이나 생각에 대해 상상해보는 능력이다.(브래디 미카코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중)
우리가 언제 어디서 어떤 노동자로 일하게 될지 알 수 없고, 내가 차별을 당하는 자리에 서게 될 수도 있으니 불편과 차별을 없애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고 과거에는 생각했다. 내가 약자가 될 수도 있으니 약자를 돕고 이해해야 한다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내 발보다는 작았던 고무 주방화를 신고 거리를 걸었던 그 밤을 떠올린다. 물에 발이 젖지 않는 것만을 목적으로 만들어져 밑창이 없고 발이 쉽게 피로해졌던 그 신발.
사람들은 모두 다른 신발을 신는다. 작업화마다 무게가 다르고 서 있거나 앉아 있는 시간도 다르다.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는 일은 그 사람의 불편함과 아픔과 고됨을 이해해보려는 노력이고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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