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07-31 18:58
현재의 중국, 그리고 전세계의 역사를 뒤바꾼 역사적 인물 JPG
 글쓴이 : mdwcgqde
조회 : 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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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중국

 

문화대혁명과 폐쇄적인 사회주의 정책으로 중국 인민의 삶이 피폐해졌을때 한 인물이 중국 정치 전면에 등장함

 

그 인물은 바로 '덩샤오핑'임

 

덩샤오핑이 새로운 지도자로 선출되자마자 중국 인민들에게 선포하는데 그 이야기가 충격적이였다.

 

덩샤오핑: "인민 여러분 우린 이제 '중국식' 사회주의로 나아갈꺼임!!"

 

그럼 여기서 말하는 중국식 사회주의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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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중국에 문화대혁명이 휘몰아치던 시기 

 

덩샤오핑은 이를 강하게 비판한다.

 

덩샤오핑: "생리를 공부한다는 사람이 하루종일 '뇌봉일기' 나 모택동어록을 암기하고 있다가는 홍(혁명적 인간)도 전(전문지식, 기술을 갖춘 인간)도 되지 못하잖느냐?" 

 

65년 당시 해당 발언이후 마오쩌둥 세력에게 숙청 당할 뻔하지만 겨우 살아남아 납작 엎드려 정계에 복귀할 때까지 힘을 기른다.

 

그리고 70년대 덩샤오핑이 정계에 복귀하자마자 어마어마한 말들을 내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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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지식은 뛰어난데 사상적으로는 쓸모 없는 인물이라 할지라도 나라에 도움이 되기만 한다면 자리만 차지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무리보다는 훨씬 낫다" - 75년 극적인 정계복귀 이후 발언

 

"모두가 가난한 것이 사회주의는 아니며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다." - 흑묘백묘론

 

"일부가 먼저 부자가 되는 것을 인정해 가난한 사람이 따라 배우게 해야 한다." - 선부론

 

"자본주의에도 계획이 있으며, 사회주의에도 시장이 있다."

 

그가 말한 '중국식 사회주의'를 가장 잘 표현한 발언들임

 

즉, 인민의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해양도시들을 특구로 지정해서 시장경제를 받아들인다는 선언에 인민들은 1차로 충격을 받았는데

 

곧이어 2번 째 충격적인 일이 발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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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 "저거 덩샤오핑 옆에 있는 사람 설마 일본 일왕이여???"

 

덩샤오핑은 곧바로 일본,미국 등 서방세계와 관계개선을 모색함. 당시 덩샤오핑은 일왕과 만나는 자리에서 깍듯한 모습을 보인다던지

 

미국 대통령과 손을 잡고 환호하는 모습을 보이며 충격에 빠트림

 

참고로 저때가 30만이 학살당한 난징대학살이 일어난지 40년도 안지난 시기라 중국 내 반발이 심했음.

 

하지만 덩샤오핑은 아랑곳하지않고 친서방행보를 보였고 서방세계도 중국을 점점 다르게 보게되는 계기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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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틈에 덩샤오핑은 서방국가들에게 한가지 요구를 하는데

 

덩샤오핑: "님들 요즘 인건비 많이 오르고 환경문제 때문에 골치 아프시죠? 우리 중국에서 저렴하게 공장 지으시죠 ㅎㅎ"

 

말그대로 중국이 '전세계의 공장'역할을 하는 계기가 이 때부터임. 

 

덩샤오핑은 슬슬 소련과 선을 그으며(덩샤오핑은 소련이 미국과 군비경쟁으로 결국 망할 것이라고 예상, 중국은 군비경쟁하지말고 경제에 투자하라고 조언)

 

소련견제를 이유로 미국의 달러를 쪽쪽 빨아먹게됨(서방국들의 기업을 유치하고 이 때부터 기업의 운영방식,기술을 전수 받은건 덤)

 

이 때 덩샤오핑이 가장 사활을 걸고 집중적으로 키운도시가 '선전'임

 

선전은 홍콩 바로 건너에 있는 도시며 80년대 덩샤오핑은 친서방정책을 바탕으로 영국과 홍콩반환권으로 딜을 하며

 

결국 '일국양제'의 조건으로 홍콩을 반환받는데 성공하게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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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덩샤오핑은 시장주의를 받겠다는거지 서양의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겠다는 뜻은 아니였음

 

서양국가들은 중국이 발전하면 자연스레 민주화로 갈 것이라 생각했고

 

덩샤오핑은 그리되면 필연적으로 거대한 중국이 분열될 것이라 생각함(참고로 중국은 중화사상을 바탕으로 수많은 민족들이 뭉친 국가임)

 

이러한 것이 제대로 부딪힌게 89년 천안문사태임

 

해당 사태로 이후 당샤오핑은 일선에서 물러나게되고 마오주의를 찬양하는 보수파들이 다시 들고일어나게됨

 

결국 정치적 수도인 베이징이 보수파에게 먹히고 중국은 시장경제를 포기한 마오주의로 돌아가려는 찰나 

 

중국, 그리고 전세계의 역사를 바꾼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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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 평당원 신분이였던 덩샤오핑이 본인이 집중적으로 발전시킨 선전부터 시작해 한바퀴 돌고 오는 '남순강화'를 시행한 것

 

덩샤오핑이 선전에 나타나자 인민들이 엄청나게 환호함. 왜냐? 선전인민들은 경제발전을 두 눈으로 목도한 사람들이기 때문

 

과거 선전은 어업이 주를 이루던 깡촌이였는데 20년도 안되서 수 많은 빌딩이 들어서고 중국 무역의 중심지 중 하나로 발돋음한 것

 

78년 덩샤오핑 집권이후 30년간 연 평균 경제성장률이 거의 10%에 달했는데 이건 좀 과장해 말하면 하루 지날때마다 세상이 바뀔정도의 발전속도였음. 

 

인민들의 엄청난 지지를 목도한 보수파들은 결국 와해되고 덩샤오핑의 남순강화는 중국이 완전한 개혁개방경제로 방향을 잡은 결정적 계기로 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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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샤오핑은 민주주의는 반대했지만 중국정치의 견제장치가 없다고 생각해 중국식 새로운 정치제도를 만들게됨

 

사회주의의 제왕적형태를 경계한 덩샤오핑은 모든 당직의 재임 기간을 최대 10년으로 제한하고, 65세 이후에는 새로운 당직에 취임하지 못하도록 명문화함. 이는 1인 독재와 원로들의 간섭을 배제하고 원활한 세대 교체를 위한 것이였으며 이에 따라 70대 ~ 80대 원로들이 당을 좌지우지하거나 수십년씩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는 행태를 견제하는 임기제를 도입시킨다.(이 제도를 지금 시진핑이 없애려고 하는 중...)

 

또한 덩샤오핑의 일생한 염원 중 하나가 GATT(WTO의 전신)에 가입하는 것이였고

 

덩샤오핑의 후계자들도 이를 이어받아 WTO(국제무역기구)의 중국가입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결국 2001년 중국은 WTO에 가입하게 됨.

 

그 이후 어떻게 되었냐?

 

 

 

 

덩샤오핑이 그리 강조하던 WTO가입이후 단 10년만에 중국은 일본의 GDP를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자리잡게 됨

 

그리고 덩샤오핑이 그리 강조하던 선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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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을 대체할 정도의 경제도시가 되었음.

 

과거 중국사람들이 선전을 통해 홍콩으로 넘어갔다면 이젠 홍콩의 젊은이들이 선전으로 넘어가 사업을 하고있는 중

 

덩샤오핑은 일국양제로 홍콩의 자치권을 보장하면서 선전을 의도적으고 키워 홍콩의 역할을 대신하게끔 만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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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샤오핑은 현재의 중국을 만든 장본인이며 

 

사후에도 아직까지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인물로

 

한 사람이 중국, 아니 전세계의 역사를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인물 중 하나라 하겠다.

 

 

출처: 내 머리

 

<출처만 남기면 퍼가도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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