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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내역) 2021.02.11
입금 16,780,000원
지난해 2월11일 오전 8시경 A씨(35·남)의 계좌에 찍힌 입금기록이다. 그는 "배달 앱으로 시킨 육개장에서 '머리카락'이 나왔다"며 고객센터에 환불을 요구한 뒤 입금을 기다리던 참이었다. 문제는 식당 주인 B씨가 육개장 값 1만원을 환불해주려다 '전액송금' 버튼을 잘못 눌러 A씨에게 1678만원이 송금된 것.
B씨는 즉각 A씨에게 연락해 잘못 송금된 돈을 돌려달라고 했다. A씨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마치 자신의 지갑에서 나온 것 마냥 그 돈을 쓰기 시작했다. 이윽고 B씨가 소송을 진행하겠다고 하자 A씨의 행동은 더 과감해졌다. 그는 같은 달 15일 경찰로 찾아가 B씨를 사기미수죄로 고소했다.
경찰에 제출된 고소장엔 A씨와 B씨의 관계가 사실과 다르게 적혀있었다. A씨는 자신들이 배달음식 소비자·판매자 관계가 아닌, '고급 중고시계'의 판매자·구매자 관계라고 주장했다. "B씨에게 고급시계를 중고거래로 1800만원에 판매했는데, B씨가 이 시계 판매대금을 두고 거짓말을 한다"는 취지였다.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되고, 사건을 들여다본 검찰은 A씨를 무고 및 횡령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법정에서도 A씨의 거짓말은 이어졌다. 그는 1심 재판 과정에서 "(B씨로부터) 선금 100만원을 받고, 시계와 보증서를 넘긴 뒤 잔금을 송금받은 것"이라고 진술했다. 당시 B씨의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한 이유에 대해선 "중고시계 잔금을 제때 입금하지 않아 독촉하려는 의도였다"고 잡아뗐다.
법원은 A씨의 '중고시계 거래'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선금 100만원만 받고 (1800만원짜리) 시계와 보증서를 모두 줬다는 내용은 고가의 중고물품을 직거래하는 개인들 간의 거래형태로서는 경험칙상 상당히 이례적"이라며 "피해자의 전화번호와 식당 소재지까지 아는 피고인이 굳이 음식을 주문하는 방법으로 잔금을 독촉했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피해자로부터 용서받지 못했고, 피해도 회복되지 않았다"며 징역 8개월을 선고하고, B씨에게 1686만원을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A씨는 1심의 형량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했다. 항소심 과정에선 2차례 반성문을 제출하는 등 태도를 바꿨다. 그러나 형량은 바뀌지 않았다.
지난 2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8-2부(부장판사 장성학 장윤선 김예영)는 "피고인이 자백한 부분이 있지만, 원심의 형을 달리할 특별한 사정변경이라고 볼 수 없다"며 A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육개장 한그릇에서 비롯된 일탈은 대가가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