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2-02-14 05:15
경찰을 천명 동원한 국가폭력도 이 여성의 양심을 꺾지 못했다
 글쓴이 : 전태군
조회 : 68  
"처음에는 나를 두드려 패려고 했어요. 조합원들 세뇌 교육을 지독하게 시켰네 어쩌네 막 이러는데, 임신 6개월이라고 말을 했죠. 사건이 원체 커져서 보는 눈이 많았으니까 유산되면 진짜 난리가 나잖아요. 애 덕을 많이 봤죠. 그런데 또 나를 못 때리니까 우리 다른 간부들을 때릴 수가 없잖아요. 다행이다 생각했죠."


조사 뒤에도 YH무역 여공들의 고초는 계속됐다. 순영 씨를 포함한 YH무역 노조 간부 4명은 1982년 3월 법원으로부터 '국가보위에관한특별조치법(이하 국가보위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사건 이후 간부들에게 경찰의 감시가 붙기도 했다.


농성 진압 뒤 정부가 준비한 버스에 실려 강제 귀향된 YH무역 여공들은 이후 정부가 만든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취직도 하지 못했다.


"취직을 못한다는 거는 뭐라 그럴까. 목줄을 쥔 거죠. 먹고 살기 위해서 했던 사람들에게 그러는 거는 참…. 그러고 나서도 다들 엄청 고생을 했죠."


YH무역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목숨을 잃은 김경숙을 추모하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박정희 정권이 무너진 뒤 전두환의 쿠데타로 또다시 군사독재정권이 들어선 탓이었다. 1980년 첫해 추모행사는 새문안 교회 지하실에서 비밀리에 치러졌다. 1983~4년과 1986년의 추모제는 경찰에 의해 원천 봉쇄됐다.


6월 항쟁이 있은 뒤인 1987년 8월 30일 김경숙열사 추모식은 노동자 대회와 병행해 제대로 치러질 수 있었다. 이후로도 추모제는 매해 진행됐다. 순영 씨도 이를 함께했다


31년 만에 밝혀진 'YH무역 사건'의 진실


노동시민사회와 달리 국가 차원에서 김경숙을 비롯한 YH무역 여공들의 복권이 이뤄지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사건 발생으로부터 29년이 흐른 2008년 3월 13일, 진실화해위는 순영 씨가 낸 김경숙의 죽음과 YH무역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을 냈다.


결정문을 보면, 경찰의 발표와 달리 김경숙은 강제진압 이전이 아닌 이후 사망했다. 시신의 후두부에서는 치명적인 상처가 발견됐고, 손등에도 파이프와 같은 둥근 관에 가격당한 상처가 있었다. 추락지점도 경찰이 발표한 건물 뒤편 창문 아래 지하실계단 입구가 아닌 건물 왼편 비상계단 아래였다.


경찰이 자신의 과오를 가리고자 한 여공의 죽음에 대해 사인부터, 시간, 장소에 이르기까지 거짓으로 점철된 발표를 했던 셈이다. 구체적인 사실에 바탕한 그 결정문을 받아든 순영 씨는 다시 한 번 마음이 아팠고, 다른 한편 기가 막혔다.


같은 결정문에서는 정부가 YH노조 여공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이들의 취업을 제한한 것도 사실이라고 적시됐다. 도시산업선교회가 이들의 농성을 배후조종했다고 한 경찰의 발표도 거짓으로 판명됐다.


진실화해위의 결정 이후 김경숙의 유가족과 전 YH무역 노조 조합원 24명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2018년에는 순영 씨 등 노조 간부 4명과 시민운동가 1명에 대한 국가보위법 위반 혐의 재심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박근혜 탄핵되던 다음날 우리가 최후진술을 했던가 그랬어요. 그날 법원에서 여검사가 계속 훌쩍훌쩍하더라고요. 판사도 고생이 많았다고 하고. 40년만이잖아요. 농성에 들어갈 때는 저 유신정권이 무너질까 한탄을 했는데 지금은 그래도 세상이 변한 건가 생각했죠. 무죄 판결은 역사의 기록이기 때문에 저에게는 뜻 깊은 일이었죠."


...


인터뷰를 시작할 즈음에는 1970년대에 노동운동을 한 43명의 여성 노동자가 쓴 수기가 책으로 나온다며 잘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알리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국도로공사 요금수납원이나 건강보험공단 콜센터 상담사들의 투쟁에 대한 생각을 물을 때는 "제가 싸울 때보다도 전선이 복잡해져 더 힘들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노동자와 함께 살다 잠들다'는 비문을 남기고 싶다던 20대의 YH무역 여공. 1000명의 경찰병력을 앞세웠던 국가도 그 여공의 양심에 따른 삶을 꺾지 못했다.

최용락 기자(ama@pressian.com)


http://n.news.naver.com/article/002/0002229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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