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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취재하며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도 독일의 대러 정책이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 시절인 2005년 러시아와 노르트스트림2 프로젝트에 서명한 뒤, 실제 가스관이 완공된 지난해까지 이를 중단할 만한 사건은 얼마든지 있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그간 조지아를 침공(2008년)했고,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합병(2015년)했으며,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방사성 물질 ‘폴로늄’이나 화학무기 ‘노비촉’ 같은 것으로 정적(政敵) 제거를 시도했다. 푸틴을 믿을 수 없었던 미국과 우크라이나, 폴란드 등은 노르트스트림2에 줄곧 반대했다. 그런데 슈뢰더에 이어 메르켈까지 16년간 독일은 이를 포기하지 않았다.
물론 경제적 이유도 있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태에 패닉한 독일인들은 탈원전을 서둘렀다. 그런 와중에 독일이 쓰는 천연가스의 30%를 공급하던 네덜란드가 최대 가스전의 폐쇄를 결정했다.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은 독일이 직면한 에너지난을 해결할 손쉬운 해법이었다.
그럼에도 1225km의 가스관으로 독일과 러시아를 꼭 연결할 필요는 없었다. 도대체 왜 독일인들은 유럽의 안보를 쥐고 흔들 수단을 러시아의 손에 쥐어주려 했던 것일까.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지난달 28일 “푸틴의 유용한 독일 바보들”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메르켈을 포함해 “’오스트폴리틱(동방 정책)’이나 ‘교류를 통한 변화’ 같은 1970년대 데탕트 정책의 향수에 눈먼 동세대의 모든 독일 정치인”이 문제였다고 분석했다. 구소련 공산권과의 대화·교류가 냉전 종식으로 이어졌다는 일종의 ‘전설’에 심취한 독일 엘리트들의 노스탤지어가 대러 정책을 그르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대화와 교류로 적대적 상대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란 감성, 가스관 연결로 상호 의존도를 높이면 평화가 온다는 근거 없는 믿음, 그 감성과 믿음을 공유하는 한 세대의 정치인들. 모두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기였다. 적어도 독일은 직접 그 대가를 치르지는 않았지만, 한국이라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