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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 독일 통일 최종 합의 문구에선 ‘나토 동진’ 쏙 빠져
그러나 베이커 국무장관의 “1인치 발언”은 미 백악관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발언은 통독(統獨) 이후에도 나토의 관할권이 ‘동독 지역’에는 미치지 않는다고 해석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베이커는 5월 모스크바에서 “소련군이 동독에서 철수하는 동안(1994년), 나토군은 그 지역으로 진출하지 않겠다”고 슬쩍 바꿨다. 고르바초프는 그럼에도 이를 받아들였다. 당시 체결하려는 문서는 어쨌든 통일 독일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베이커는 2014년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뒤 가진 인터뷰에서 “1인치 발언은 잠시 운을 뗀 정도였는데, 푸틴이 협상 과정에서 나온 얘기를 근거로 삼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박했다. 당시 국가안보위원회(NSC)에서 소련‧동부유럽 담당 국장이었던 콘돌리사 라이스 전 국무장관은 뉴욕타임스에 “그때는 소련의 붕괴, 바르샤바조약기구 해체 이런 것이 모두 불분명한 시점이라, 나토 확장은 1990~1991년 의제에는 있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주장은 공개된 당시의 미 외교‧안보 기록과는 맞지 않는다.
◇ 1990년 독일 통일 ‘최종 합의’ 문구 놓고 다른 해석
이 합의는 오로지 통일 독일의 지위에 관한 것이므로, 냉전 시절 소련 영향권에 있었던 국가들에 대한 언급은 당연히 없었고, “나토군의 동독 지역 활동을 허용한다”고만 명시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를 ‘독일의 동쪽’으로는 나토가 동진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해석했다. 당시 미 CIA 국장이었던 로버트 게이츠도 회고록에 “서방 지도자들이 계속 ‘동진 안 한다’고 발언했기 때문에, 고르바초프와 소련 수뇌부는 ‘나토 확장은 없을 것이라고 믿게끔’ 됐다”고 썼다.
◇ 옐친 이후 러시아 지도자, “나토 확장에 ‘거부권’ 있다” 억지 주장
그러나 1993년이 되면서 폴란드‧헝가리‧체코의 나토 가입이 논의 대상이 됐다. 미국과 나토, 러시아는 이 문제를 다루는 1997년 ‘나토-러시아 관계정립조례’를 체결했다. 보리스 옐친 당시 러시아 대통령은 1990년 통독 합의는 “나토 존(zone)을 동쪽으로 확장하는 선택권은 아예 배제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양 진영간에 오간 대화 문서록을 보면, 서방 지도자들은 고르바초프에게 ”바르샤바조약기구를 떠나는 나라 중 어느 나라도 나토에 가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옐친은 따라서 “나토 확장에 대해 러시아가 거부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나토 확장을 멈출 생각도 없었다. 그러나 옐친은 국내 정적(政敵)들을 의식해, 마치 러시아가 ‘거부권’을 가진 것처럼 선전했다. 이는 이후 푸틴과 러시아 대중이 “계속 미국에 속고 있다”고 말하는 근거가 됐다. 푸틴으로서도 “러시아가 냉전 때의 위엄을 잃은 것은 소련 붕괴가 아니라, 서방의 거듭된 배신 탓”이라고 주장하는 게 국내에서 더 설득력이 있었다.
◇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위협 안 한다’ 약속 어겨
1994년 러시아‧미국‧영국은 ‘부다페스트 각서’를 체결했다. 신생 독립국 우크라이나가 자국에 배치된 1900개의 러시아 핵탄두를 러시아로 보내는 대신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독립‧주권‧국경을 존중하고, 군사력 사용이나 위협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2014년 푸틴은 크림 반도를 강제 합병했고, 소속‧계급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녹색 군복의 러시아군을 동원해 우크라이나 동부를 침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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