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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만 줄어든 가정폭력 …답은 '코로나가 만든 그늘'
학교가 상당 기간 문을 닫고 노인정, 양로원, 무료급식소도 폐쇄됐다. 코로나19(COVID19)가 발생하면서 공공이 분담하던 교육과 돌봄의 기능이 가정의 몫이 됐다.
가정의 역할이 커지면서 여러 부작용이 발생했다. 가정에서 모든 구성원들의 대부분의 활동이 이뤄지다보니 가정불화가 크게 늘었다. 더 나아가 아동학대, 존속폭행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아졌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기본인 사회가 되다보니 가정은 더욱 철저하게 사적인 공간으로 남겨졌다. 부모에게 학대당하는 아이, 자녀에게 매 맞는 부모가 있어도 주변에서 알기가 어렵다. 사건이 발생한 다음에야 알려진다. 1인 가구의 경우 더 외롭게 죽음을 맞게된다. 코로나가 만든 사각지대, 이른바 '코레이존'(코로나 그레이존)이 커진 셈이다.
■ 지난해 가정폭력, 2년 전보다 9% 감소 …'폭력 있어도 신고 못하는 처지'
4일 보건복지부의 '2020년 아동학대 통계'에 따르면 아동학대 신고 접수는 2.1% 증가했다. 증가폭은 예년보다 낮았지만 가해자가 부모인 경우(82.1%)는 2012년 이후 가장 컸다. 43명은 학대로 인해 사망했다. 아동학대를 공식집계한 2001년 이래 가장 많은 숫자다. 존속폭행과 상해 등 존속범죄도 코로나19 발병 직전인 2019년(2428건)보다 7.5% 늘어났다.
어린이집, 학교 등이 문을 열지 않고 재택근무도 보편화되면서 가정불화가 빈번해지고 불화를 넘어 폭행 등의 범죄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자녀 양육에서 학교폭력이 가장 심각한 문제였다면 코로나19 이후에는 돌봄과 교육 모두가 가정의 몫으로 돌아오다보니 자녀 양육과 교육 자체가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됐다.
아동학대를 포함한 가정폭력 전체의 수치를 따져보면 오히려 감소추세다. 지난해 경찰에 접수된 가정폭력신고건수는 21만8669건이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인 2019년 24만564건 대비 2만1895건(약 9%) 줄어든 수치다. 2020년(22만1824건)에도 전년보다 1만8740건 줄었는데 지난해는 그보다 3155건 더 줄어든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약 25%가량 가정폭력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조사되는 유럽과는 대조적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수치를 토대로 우리나라만 가정폭력이 줄었다고 결론내리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외부노출이 줄어들면서 타인에 의한 신고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같은 공간안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하게되다보니 피해자가 피해를 당해도 신고를 할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전문가들은 또 악화된 경제상황으로 '소득단절'로 인한 영향이 더 커지면서 신고를 더 망설이게된 상황도 있다고 지적한다. 가정폭력은 분명히 상존해왔는데 신고는 오히려 어려워진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 확진자 발생 청소년쉼터 신규 입소 중단…상담기관도 '휴관'
가정의 역할이 커지면서 각종 부작용도 크게 늘었는데 도움받을 만한 방안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전문적인 상담기관에 상담을 받고 싶어도 상담센터들도 코로나19 확진으로 인해 휴관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가정폭력이 발생했을 때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를 위해 운영중인 청소년쉼터는 지난해 12곳에서 확진자가 발생해 신규 입소자를 받지 못했고 올해는 두달동안 18곳에서 확진자가 발생해 일부 쉼터는 제기능을 하지 못했다.
자녀를 양육 문제를 전문가가 상담해주는 TV프로그램 '금쪽같은 내새끼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이같은 배경에서다.
코로나19 이후 죽음 역시 철저하게 사적인 영역으로 방치되는 경우가 늘고있다. 지역사회와 왕래가 줄어들다 보니 혼자 사는 사람은 죽음 이후에도 며칠 째 방치되는 고독사가 크게 늘었다. 노인의 영역으로 치부되던 고독사는 이제 연령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고 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사회적 지원들은 제거되고 돌봄 등에 대한 부담이 오롯이 가정으로 환원되고 있다"며 "부담들이 가정으로 환원되고 복귀되면서 가족 구성원들의 스트레스가 심해지고 부적절하게 표출되는 양상"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처음 2년에는 모두가 당황해서 아무도 이 부분에 신경쓰지 못했지만 앞으로는 비대면 상황에서도 사회적 지원이 복원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방법을 모색해야할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가정폭력에 극단시도까지 했어도..."처벌 원치않아 엄마니까"
2년 전부터 엄마의 짜증이 부쩍 심해졌다. 손찌검을 하는 날도 잦아졌다. 욕을 하는 횟수도 많아졌고 술을 마시면 술을 뿌리기도 했다. 경기도에 사는 21세 여성 이밝음씨(가명)의 이야기다.
어머니의 신체적·언어적 폭력이 심해진 것은 이씨와 어머니가 집에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부터다. 그전에도 술을 마시면 욕을 하거나 술주정을 부리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심하지는 않았다. 이씨 어머니의 남자친구도 이씨의 학대에 가세했다.
참다못한 이씨는 결국 극단적인 시도를 했다. 중환자실에서 깨어난 이씨에게 경찰은 어머니에 대한 처벌 의사를 물었다. 이씨는 거부했다. 어머니에 대한 처벌을 거부한 이유를 묻자 이씨는 "엄마니까요"라고 답했다. 이씨는 어머니가 처벌받기 보다는 치료되기를 바랐다.
중략
"아들 콩밥 먹일 순 없잖아요" 자식에 맞고 사는 부모들, 매년 2000명
서울에 사는 홍철수씨는(63세 가명) 지난해 6월 20세 아들에게 폭행을 당해 팔이 부러졌다. 수술을 요하는 상황이지만 충격이 너무 컸던 탓에 마음을 추스리고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잠시 미루고 있다.
홍씨는 중소기업에 다니다 얼마전 은퇴했다. 은퇴 전까지는 업무 특성상 지방으로 발령받아 근무하는 일이 많아 그동안은 가족과 떨어져 지낸 시간이 길었다.
은퇴 후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진데다 코로나19로 아들도 집에서 뒹굴거리며 방황하고 있는 것을 보니 답답한 마음이 들어 아들에게 훈계했다. 이에 돌아온 것은 격분한 아들의 폭행이었다.
문제는 이런 일을 겪고도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모르는 부모가 많다는 점이다. A씨는 "이런 모습을 보고 아내도 어찌할 줄 몰라 바라만 보고 있었다"며 "저도 어디서부터 바로잡아 나가야할지 몰라 수술도 미루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존속범죄 2020년 2609건 달해…"부양 스트레스, 학대로 표출"
...
■ 자식 처벌 원치 않는 부모들…"자식에게 피해 줄 수는 없어"
전문가들은 신고된 건수만 2000여건이지 실제로는 그 수가 더 많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존속폭행이 발생해도 '사회적 체면때문에' 또는 '처벌을 원치 않아서' 등의 이유로 부모들이 신고를 꺼려하는 탓이다.
경찰에 신고를 해도 처벌을 받지 않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존속폭행 역시 단순폭행과 동일하게 피해자의 동의 없이 처벌이 불가능한 '반의사불벌죄'이기 때문이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어르신들은 일반적으로 '내가 피해를 받더라도 자녀한테 피해가 가면 안된다'는 생각을 한다"며 "최근 '학대' 개념에 대한 인식이 어르신들 사이에서도 많이 퍼졌지만 그래도 자녀의 앞길을 막을까 폭행을 당하고도 참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존속 학대 증가가 사회적으로 자녀들의 부양 부담이 커지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평균수명은 늘어나는데 비해 은퇴시기는 빠르고 부모를 부양해야할 자녀들은 취업이 어려운 게 최근의 현실이다. 이 가운데 부양에 대한 책임을 자식들이 오롯이 져야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폭력으로 갈등이 표출되기도 한다는 분석이다.
정 교수는 "존속 학대는 전통적인 부양 의무를 수행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이라며 "그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부양 대상인 부모를 향해 폭력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이어 "코로나 이전부터 존속폭행 등은 증가추세라 코로나19가 주된 원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코로나19 이후 어려운 경제적 여건 등으로 인해 심화되는 경향은 보인다"고 분석했다.
해마다 존속 폭행의 수는 늘어가지만 피해자 보호 대책은 부실하다. 박소현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법률구조부장은 "접근금지처럼 자식을 부모와 분리하는 임시조치가 마련됐지만 가해자가 자립할 형편이 안되는 경우가 많다"며 "자녀가 나갈 수 없다는 걸 아는 부모가 스스로 나가기를 선택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가정폭력 쉼터가 여성 전용인 경우가 많아 노인 남성이 자녀에 폭행당하면 길거리로 내몰리는 일도 있다. 박 부장은 "쉼터 시설이 주로 여성 피해자를 위한 경우가 많아 부부가 갈라지는 일도 생긴다"며 "남성 피해자들은 노숙인 쉼터 등을 찾아야 할 수도 있고 사각지대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남편에 수십년 맞아도...'처벌 말아요' 한마디에 손발 묶이는 경찰
2010년 결혼한 이미소씨(가명)는 몇년 전부터 남편과의 이혼을 생각해왔다. 남편의 폭력이 반복되면서다. 경찰에 신고를 해보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는 남편의 말을 믿고 용서를 해준 것이 십여차례에 달한다. 하지만 이후에도 남편의 폭력은 계속됐다.
이 씨는 최근에는 이혼 생각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코로나19 이후 경제상황이 나빠졌기 때문. 이 씨는 "요즘에는 나가서 식당 서빙 자리도 구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남편의 폭력 때문에 이혼을 하루에도 열두번씩 고민하지만 요즘에는 그럴 수도 없다"고 토로했다.
■ 가정폭력 신고 중 검거는 단 20%...중도 개입이 어려운 경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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